그리스도인이 된 후 변화가 되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첫째는 의인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로운 존재됨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는 의식의 내적 변화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성화됨이다. 그 사람의 성격, 성품, 습관, 생각, 행동이 예수님처럼 변하는 과정이다. 셋째는 하나님께 영광돌림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성경은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하여 말씀할 때 항상 거기에 따른 변화된 삶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리스도인 중에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한 번에 변하기를 바라는 성도들이 있다. 강력한 신앙체험은 변화의 결정적 회심을 가져올 수 있지만, 한번의 체험으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마술적 변화가 아니다. 영적인 충만한 지식으로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라 믿기도 한다. 논리대로 기계적으로 변화지 않는다. 환경이 변하면 변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바닥을 경험하면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더 강팍해지는 경우도 많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민이 있다. 기독교인치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알고는 있지만 그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실체이고, 이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양보 없이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강조한다. 예수님이 인간의 연약함, 죄악된 성향, 마음에 원하는 것을 행하는 욕망, 완악한 마음을 알지 못하셨을까? 산상수훈의 결론의 말씀은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가르치신다.
바울을 통해서 디모데에게 보내는 첫번째 편지에서 인간의 비극적 실존을 극복하는 길을 가르친다. 거룩한 삶을 위한 경건의 연습이 있어야 할 것을 가르쳐주시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내가 쫓고 있는 허탄한 신화들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버리는 연습, 경건에 이르도록 열심히 땀흘리는 영적인 노력,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하고 있는 지금 그 일에 충실할 것을 말씀한다.
운동선수들은 한번의 경기를 위해 많은 시간 애를 쓰며 훈련을 연습한다. 경기할 때 이론을 갖고 하는 선수는 없다. 그 때는 평소 연습했던 그 몸으로 반사적으로, 감각적으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 생활, 때로는 영적 전투도 이와 같다. 시험이 찾아올 때 반사적으로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야 하고 마음으로 그 충동을 이길 수 있는 내면의 힘은 평소에 내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신앙의 수준이 평가되었을 것이다. 연습 안하고 그 때가면 되겠지! 하는 사람은 마술적 신앙인이다. 신앙은 이론과 논리가 아니다. 신앙은 연습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마침내 우리의 삶의 흔적이 하나님께 영광돌린 삶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도 얻게 될 것이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