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나훔1: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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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나훔 1: 1-7
제목 :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
일시 : 2023. 8. 20.
나훔은 니느웨에 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입니다. 나훔의 이름 ‘위로’라는 뜻에 나훔서의 메시지를 알 수 있는 선지서입니다. 악의 상징인 앗수르의 심판과 멸망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위로가 되었다는 메시지입니다. 나훔서는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와 보응에 관한 두렵고 떨리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서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공존하지만 나훔서에는 구원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훔서가 전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듣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장 2절에서 나훔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나훔이 전하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요나서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나훔은 주전 7세기에 남유다에서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은 나훔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악상의 낱낱이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니느웨가 어떤 도시였지요? 1세기 전에 요나를 통해서 전해진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니느웨 백성들은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베옷을 입고 회개하고 심판을 유예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죄를 짓습니다.
니느웨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도시입니다. 니느웨는 하나님 앞에서 집행유예 기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어찌 니느웨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우리 마음에 우상을 두고 섬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우리가 행한 죄악들을 어찌 입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일과 마음에 품었던 생각들을 따라서 심판하셨다면 한 사람도 그 심판을 면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나훔은 이러한 집행유예 기간에 죄를 지은 니느웨 성의 심판을 앞두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그런데 나훔의 메시지의 청중이 누구였을까요? 앗수르가 말씀을 듣는 주인공이고 유다 백성은 이 말씀을 옆에서 듣는 청중이 된 것입니다. 나훔서는 앗수르에 대한 강력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지만 들어야 할 청중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나훔은 앗수르와 니느웨에게 회개할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자기 백성을 깨우치고 계십니다.
니느웨의 죄악을 알 수 있는 사건을 열왕기서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니느웨가 어떤 곳입니까?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니느웨는 요나서의 배경이 된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통해 니느웨를 구원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훗날 니느웨는 이전보다 더 악하고 교만해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앗수르를 진노의 막대기라고 표현하였는데 이스라엘을 심판하신 도구로 쓰여진 민족입니다. 그런데 훗날 앗수르가 주변 나라들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것이 자기들의 힘이 강해서 그런줄 알고 교만해진 것입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기세등등한 앗수르는 남왕국 유다를 침공하여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그 내용이 열왕기하 18장에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앗수르의 왕은 산헤립이었고 유다의 왕이 히스기야입니다. 산헤립이 남유다에 쳐들어와서 하나님을 모독하며 비방합니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우리의 신에게 무릎을 꿇었는데 너희가 의지하는 신 여호와가 별수 있겠는가? 힘도 능력도 없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말고 항복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산헤립의 말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왕하 18: 33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35 민족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의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나훔은 이렇게 말한 오만한 왕, 산헤립을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라 한 것입니다.
1:11 여호와께서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이렇게 교만한 앗수르 군사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열왕기하 19장 35절에 보면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였습니다.
이 광경을 나훔은 8절에서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할 것이고 흑암으로 쫓아내실 것이라 한 것입니다. 나훔 1장 12절에서 니느웨의 완전한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1: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나훔은 니느웨의 포악성을 드러냅니다. 원래 니느웨는 폭력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들은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여 약탈물로 그들의 성읍을 세웠습니다. 그들의 잔인한 행동은 죄수들의 살껍질을 벗기고, 다리, 팔을 자르고 눈이나 혀를 빼 버리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을 불속에 넣어 태우기도 하여 사람의 해골로 산을 이루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니느웨의 잔인성을 2장 11절에서 니느웨를 수사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2;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12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이러한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2: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장에서는 심판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를 고발합니다.
3:1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으면 니느웨 성 별명이 피의 성이라 불렸겠습니까? 앗수르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잔인한 그들의 포악성을 의성어로 표현합니다.
3:2 휙휙거리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소리, 뛰는 말, 다리는 병거,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살육당한 떼, 큰 무더기 주검, 무수한 시체,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이어서 나훔은 앗수르의 심판의 이유를 하나님을 떠나서 음행과 마술로 여러 족속을 유혹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3: 4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였느니라
고대 세계에서 음녀라는 말은 약속을 깨뜨리거나 조약을 어긴 자들에게 붙여진 일반적인 모욕의 말이었습니다. 니느웨는 우상과 마술이 만연한 도시로 이웃 나라들과 약속을 깨뜨리고 그들을 짓밟는 간교한 술수를 행한 민족이었다는 것입니다. 나훔서가 고발하는 죄는 패악과 거짓으로 가득한 성, 그리고 마술과 음행으로 다른 나라들까지 죄에 빠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앗수르 왕을 호출하며 죄인의 고개를 들게 하신 후에 최종 심판을 내리십니다. 다시는 회복하거나 고칠 수 없어 폐기처분될 세계제국이 될 것이라 선언합니다. 이 선언을 듣는 방청객들은 재판장되시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으로 이해하고 손뼉을 칠 것입니다.
3:18 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
니느웨의 심판 소식을 듣는 자들마다 손뼉을 치는 이유는 니느웨의 잦은 침략과 압제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니느웨의 멸망이 침략을 당했던 주변 나라에게는 큰 기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앗수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당시 더 큰 제국이었던 이방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 2장 1절이 말하는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하셨는데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훔은 앗수르에게 조소하듯이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하여 준비하여 보아라“ 하지만 강들의 수문이 열리고 왕궁이 소멸되고 정한 대로 왕후가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가게 될 것인데 모든 시녀들이 가슴을 치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게 될 것이라 예언한 것입니다. 한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니느웨가 스스로의 교만과 악행으로 결국 폐허가 되어 다시는 재건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하는 자들을 향하여는 환난 날에 산성이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돌아오라는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나훔은 이 말씀을 니느웨에게 선언한 것입니다. 앗수르의 운명도 내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나훔의 의도는 너희들도 만약 돌아오지 않으면 너희들도 니느웨와 같이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선포인 것입니다. 나훔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하신 말씀은 1장 7절이 증거하는 하나님이십니다.
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니느웨에게 임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 편에 선 자들, 하나님께 피한 자들에게 선포된 말씀입니다. 얼마나 큰 위로일까요? 앗수르의 강성과 악한 자들이 득세하고 악인들이 번영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이 부조리와 어두움이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입니까?“ 탄원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니느웨에 대한 심판은 단순한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의로운 자의 탄원을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나훔은 바로 그 하나님을 1장 2절에서
1: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이 두려운 말씀으로 들리신다면 나훔이 전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탄원하는 자에게는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는 좋으신 분으로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사람 사이의 질투처럼 이기적이거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의 마음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해치는 자들에 대해 열정적으로 반드시 보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나훔을 통해서 악인의 멸망을 예언하신 하나님은 오늘의 역사 속에서도 악인을 향한 멸망을 선포합니다.
앗수르의 결정적인 죄악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인류를 괴롭혀왔던 오래된 원수 사단의 나라가 멸망하는 것, 죄의 통치가 무너지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소식입니다. 나훔서를 통해 거대한 악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성도들을 괴롭혔던 사단이 멸망하는 승리를 맛보며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 줄 영원한 위로를 사모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인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와 소망으로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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