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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숲설교(고린도후서)
안남기목사 2024-02-24 추천 0 댓글 0 조회 44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7-21 개역개정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고린도후서 5: 17-21

제목 : 복음을 위한 변명

일시 : 2024. 2. 25

 

고린도 서신에 언급된 내용들을 근거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최소 4번의 편지를 쓴 것으로 추론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16개월 간 체류하며 설립된 교회입니다. 첫 번째 편지는 고린도전서 59절에 언급된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내용의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편지는 소실되었습니다.

 

두 번째 편지라 할 수 있는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 중에 머물렀던 에베소에 있을 때 글로에의 집 편과 대표자들이 가지고 온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십자가의 능력과 지혜의 복음으로 대답한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 곧 고린도전서를 디모데를 통해 고린도교회에 전합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여전히 고린도교회는 혼란스럽고 시끄러웠습니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4:19) 라 하면서 곧 방문할 계획이 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직접 고린도교회를 방문하게 됩니다. 처음에 계획한대로는 방문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교회 내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어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의 사도성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들도 생겼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에 낙담한 사도 바울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를 떠난 뒤에 다시 세 번째 편지를 디도를 통해 전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24절에 보면 내가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다는 편지입니다. 이 편지가 세 번째 편지라 불리는 눈물의 편지또는 고린도후서 78절에서는 근심케 한 편지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실랄하게 책망하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혹자는 고린도후서 10장부터 13장까지의 내용이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세우고 아비의 심정으로 권면하였으나 바울의 권위에 도전하고 교회를 어지럽힌 모습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고 많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에서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올 디도를 만나기로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심령이 편치 못한 채 마게도냐로 향하게 됩니다. 디도와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바울의 마음 한 구석에 고린도교회가 자기의 편지를 읽고 어떤 반응을 했을까 하는 마음을 고린도후서 75절에서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심한 책망의 편지가 고린도 교인들을 도리어 더 큰 근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기다리던 디도를 만나게 되었고, 디도가 가지고 온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눈물의 편지로 인해 교회가 회복되고 화해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때 마게도냐에서 쓴 편지가 네 번째 편지라 할 수 있는 고린도후서인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고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했던 바울에게는 디도가 가지고 온 소식은 하나님의 위로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의 심정을 고린도후서 76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7: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시작하면서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시는 이시로다

 

먼저, 바울은 편지 서두에서 인사와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이 연기되었던 것에 대해 변명합니다. 고린도전서 165절과 고린도후서 115절에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고자 한 계획이 있었으나 결국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미쁘신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었고, 사도의 역할은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고,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로 성도들에게 시간을 주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의 진심이 담긴 마음을 확인해보십시오

 

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교회에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신임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추천서조차 보내지 못한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이들은 다른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데에는 믿음으로만 되지 않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는 고린도 성도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하고 세워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도록 권면하는 바울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써주신 추천장을 부여받아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자신의 사도직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는 고린도 성도들이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 자격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으로 삼은 데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바울은 3장에서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신 복음을 율법과 대조하여 설명해줍니다. 복음을 새 언약이라 하였고, 율법을 옛 언약이라 한 것입니다. 복음은 영으로 쓴 것이고, 율법은 조문으로 쓴 것입니다. 복음은 살리는 것이고,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나 선한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선한 율법이 도리어 우리를 죽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복음은 마음에 새기는 것이고 율법 조문은 돌에 새기는 것입니다. 율법 조문의 직분이 영광스러운 것이지만 더 영광스러운 영의 직분이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켜 수건이 마음에 덮인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수건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체가 아닌 예표요, 그림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에는 수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구약을 읽을 때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여전히 수건이 덮고 있는 것입니다.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증거합니다. 바울은 수건이 마음에 덮인 자들을 향해 복음을 선포합니다.

 

3: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복음이 주는 자유란 율법이 주는 정죄로부터의 자유이고, 율법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율법이 주는 공포와 무거운 짐과 절망과 정죄감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 자유함과 영광을 18절에서 선언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면서도 복음을 변호하고 복음의 능력을 선포합니다.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도의 직분을 주심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한 것입니다. 자신이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았고 사도로 부르셔서 복음을 맡겨주셔서 일꾼으로 삼아 주셨으니 누구에게도 떳떳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의 당당한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새로운 정체성과 영광스러운 직분 화해자의 새 사명을 수행해야 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바울은 이 존귀한 사명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가 되었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5: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바울은 18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하며 구원이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 한 것입니다. 19절에서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21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 하였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심으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되었기에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은 사람이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면서 목숨을 걸고 증거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모금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감당할 자들의 구체적인 섬김을 가르친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이 겉으로는 자비량 사역을 하면서 뒤로는 연보를 챙긴다는 오해도 있었지만,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돕는 것은 신령한 일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구제 헌금의 차원이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간의 유대를 맺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연보를 드리는 일을 소홀히 해 왔었고 마게도냐의 교회들보다는 휠씬 뒤떨어져 있었습니다. 분명 교회에 있던 분쟁과 무질서로 말미암음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즉시 그 일에 열심을 내도록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다른 어느 편지보다도 사도 바울 자신에 대해 변호하는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첫 9장은 감사와 인정으로 특징을 이루고, 마지막 4장은 단호함 격종적인 감정도 드러내면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예를들면 광주리에 담겨 다메섹으로부터 피난한 일,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던 경험, 그의 육체의 가시와 고난당한 경험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렇게 한 것은 여전히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거짓 사도에게 미혹되어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자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흔들리는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면서 자신과 거짓 선지자를 비교하면서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하며 거짓 선지자들과 비교하여 스스로 자랑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이라 말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사탄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듯이 스스로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어찌 너희가 용납하느냐 한탄하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적극 변호하고 있는데 그의 자랑은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변호하고 교회를 변호하는 것이었음을 호소한 것입니다.

 

12:19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바울은 시간이 지난 후에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지만 진정한 관계를 회복하기를 기대하며 세 번째 방문을 앞두고 당부한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고린도교인들을 형제로 부르며 다섯 가지를 당부합니다.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그리고 거룩한 입맞춤을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식구가 되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처입은 목회자였지만 진정한 사도의 권위로 축도로 마치고 있습니다.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좀처럼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들 가운데 바울은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인들을 향해 손을 들고 축도의 손을 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서 상처입은 목회자의 진정성 있는 교회를 사랑함과 직분의 존귀함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을 위한 변명을 사도 바울과 같이 할 수 있는 진정한 복음의 사람들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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