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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사사기 핵심설교)
안남기목사 2023-02-12 추천 0 댓글 0 조회 339
[성경본문] 사사기16:28-31 개역개정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사사기 1628-31

제목 :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설교 강단에서 요즘 시대는 사사시대와 같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어떤 의미라 생각하셨나요? 사사기에 기록된 범죄와 악행이 만연한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고, 사사기의 핵심 구절인 왕이 없으므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대로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좋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시대, “Just Do it”,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한 주관적 도덕주의의 시대로 이해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사사가 필요한 시대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 보았을 때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쓰임 받았던 사사들도 끝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시지요? 그러나 특별히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실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사사로 선택하사 사명을 감당했던 사사들까지도 부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사사가 되셔서 마침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연대기적으로 구분할 때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를 창조시대라 부르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까지 족장시대, 모세로부터 여호수아까지 출애굽시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지기까지 약 350년 시대를 사사시대라 부릅니다. 그 이후 왕정시대, 포로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사란 선비 사() 자와 스승 사()를 합한 단어입니다. 사전에는 심판, 판사라고 나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판관기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당시에는 국가가 정한 재판관이 없었고 그 지방에서 존경받는 어른들이 재판을 담당했는데 사법적인 재판이라기보다는 백성들 사이에 사소한 분쟁이 생겼을 때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옳고 그름을 분별해주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가르친 지도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사기를 숲으로 보면 세 봉우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서론, 본론, 결론의 구조가 선명하게 보이는 책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야기의 구조와 내용의 배열을 통해서도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첫 번째 봉우리는 서론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실패한 원인을 두 가지 차원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봉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쇠락하는 현상을 열두 사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줍니다. 셋째 봉우리는 약속의 땅에서 일어난 총체적인 타락한 현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뒤로 갈수록 사사들의 이야기가 많아지고 더욱 더 부패한 이야기로 발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사기 저자의 의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장부터 36절까지 사사시대의 영적인 조감도를 볼 수 있는 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론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합니다, 먼저,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입장에서 서술합니다. 11절부터 25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에서 가나안 거민들이 올무가 될 것을 아시고, 그들을 진멸하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 하였습니다. (7:2-3) 그러나 1장에서 쫓아내지 못한 결과 가나안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게 되었고,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기도 하고, 심지어 가나안의 신들까지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단지파는 산지로 쫓겨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26절부터 36절까지 사사시대의 영적인 배경을 서술합니다. 여호수아마지막 장에서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24: 31) 사사기는 여호수아의 연장선에서 이 구절의 말씀을 26절에서 다시 언급하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상태가 어떻게 변했는지 사사기 210절은 말씀합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는 당시 이스라엘이 겪는 모든 불행과 고통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 홍해 바다를 가르신 하나님,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그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신앙교육의 부재였을까요? 아니면 듣기 싫어하는 세대라 그랬을까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데 그분이 하신 일을 알 수도 없고, 그 분을 사랑할 수도 있었을까요? 결국 아무런 능력도 없는 우상을 섬기고 풍요로운 가나안 문화에 동요되고 혼합되어 가나안화되었다고 고발한 것입니다. 가나안을 주신 이유는 가나안을 여호와화 하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사 말기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을 통해서 사사시대의 부패와 타락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너무나 당시의 현상을 냉혹하게 비판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12) 하였습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220절에서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다고 근원적인 원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이러한 평가를 한 다음에 바로 이어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음을 고발합니다.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말을 일곱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을 때 그들에게 내리신 재앙은 주변 국가들의 공격과 지배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통이 깊어질수록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세우셔서 주변 국가들의 억압과 괴롭힘에서 구원해주십니다.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며 평안을 누리지만, 사사가 죽고 나면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패턴으로 약 일곱 번을 반복해서 사사들의 이야기가 전개된 것입니다. 어찌 일곱 번뿐이었겠습니까? 아담으로부터 오늘 나에게 이르기까지 이러한 악순환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사사기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는 모습이 열두 사사들의 이야기가 3장에서부터 16장까지 전개됩니다.

 

사사기의 본론 부분입니다. 사사들의 활약이 다소 길게 기록된 사사를 대사사’, 활약이 짧게 소개된 사사를 소사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사사들에 대한 사사기 저자의 평가는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기드온, 삼손도 실패한 사사였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특징이 보이는데 문제가 많은 사사일수록 내용의 양이 많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사사 옷니엘로 시작합니다. 두 번째 사사 에훗이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삼갈은 단 한 구절로 소개합니다. 네 번째는 여성 사사 드보라의 이야기입니다. 다섯 번째 사사는 기드온입니다. 여섯 번째 사사 돌라와 일곱 번째 사사 야일은 두절씩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사사는 입다입니다. 아홉 번째 사사 입산’, 열 번째 사사 엘론’, 열한 번째 사사 압돈’, 그리고 마지막 열두 번째 사사, ‘삼손의 이야기가 13장부터 16장까지 네 장에 걸쳐 나타납니다.

 

사사기 기자는 첫 번째 사사 옷니엘은 흠집이 없는 인물로 묘사되었고, 사사기 이야기의 문예적인 틀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옷니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사는 온전하다 할 수 있는 사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 장애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여성이었던 드보라가 쓰임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시대가 영적으로 가물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대 환경이었습니다. 적군의 침입이 무서워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는 소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의 표징을 보여주면서까지 부르셨습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라는 유명한 전쟁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아내가 70명이나 되었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의 마지막이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첩의 아들 중에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거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인물이 없었으면 불량배의 우두머리였던 입다를 사용하셨을까요? 암몬 족속을 물리쳤지만,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에게 모욕과 수치를 당한 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입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금지하신 일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는데 그의 딸이 희생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야일이라는 사사가 있었는데 그의 이력서는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기록합니다. 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왕노릇하며 살았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영의 강력한 역사 가운데 있었던 삼손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블레셋 여인 들릴라 사이에서 갈등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실패하고만 삼손의 모습은 하나님과 우상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봅시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와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목회자의 모습을 돌아보면 사사들의 모습과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사기에서 동족 간에 시기하고 싸우는 모습이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사명을 감당했다가 첩을 70명이나 두고 왕노릇하며 자기만의 왕국을 이루었던 사사들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럼에도 한국교회를 통하여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럼에도 마지막 삼손의 모습에서 우리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보게 됩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기에 하나님의 영이 저절로 임한다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이 당연한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남용된 정욕으로 말미암아 머리털이 뽑히고 눈이 빠지고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반복된 마지막 기도가 마지막 사사 이야기의 결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16:28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시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과 우리 한국교회가 다시금 하나님께 부르짖고 구원을 간구할 때 우리의 연약하고 초라하고 볼품 없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도 당신의 구원 약속을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진정한 왕이요 사사가 되시는 하나님을 사사기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우리를 이끄는 책입니다.

 

셋째 부분(17-21)은 당시의 부패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부록과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영적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구절이 네 번씩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나요?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리시는 신정체제를 구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다스리는 제사장 나라 제도를 잘 정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레위 지파를 통해서 다스리시는 체제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가르쳐 준 대로 12지파가 얻은 기업에서 48개의 성읍에 흩어져 살게 한 것입니다. 레위인의 사명은 열두 지파 가운데 섞여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사장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는 총체적 부패의 원인을 왕이 없어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던 두 개의 사건을 결론에서 덧붙인 것입니다.

 

첫 번째 사건은 에브라임 산지에 거주하는 미가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미가가 어머니의 은 1,100개를 훔쳤다가 어머니가 훔친 자를 저주하자 아들이 그 돈을 내놓습니다. 어머니는 그 저주가 아들에게 임할까 두려워 제사장들이 입는 옷인 에봇을 입히고 제사장으로 삼고 가정 수호신인 드라빔을 만들어 신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176절에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고 평가한 것입니다.

 

이 가정과 연관된 스토리가 바로 이어서 전개됩니다. 유다 베들레헴에서 거주했던 레위인이 거류할 곳을 찾으러 한 가정집에 찾아 왔는데 바로 미가의 집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레위인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은 열과 의복 한 벌, 먹을 양식을 받아 가며 한 가정의 복을 빌어주는 사적 종교인으로 안주하고 만 것입니다. 사사기 1711절에서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같이 됨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레위인도 마찬가지였고, 이어서 한 지파가 그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사건이 18장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단 지파 이야기입니다. 단 지파는 여호수아가 땅을 분배할 때 블레셋 족속이 거주하던 땅을 할당을 했지만 블레셋 족속의 등쌀에 못이겨 결국 라이스라는 지역으로 이주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대표자들이 단 지파 사람들을 데리고 가려는 여정에 미가의 집에 들러서 그 집에 있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약탈하고, 이를 제지하는 레위인을 협박하고 회유합니다. 한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 지파 전체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미가의 제사장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단 지파를 따라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도 그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저자는 두 번째 이야기도 또 한 사람의 레위인이 등장시켜 전개합니다.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레위인의 첩으로 인해 윤간이라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도덕적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래 전 소돔과 고모라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제사장 나라의 땅 기브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총회가 모여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총회가 세운 대책이란 베냐민 지파에게 기브아의 불량배를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베냐민 지파는 그들의 소견대로 거절합니다. 이로 인해 베냐민 지파와 열한 지파와 동족 간에 전쟁도 발생했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거의 멸절될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사기는 이러한 전쟁을 일으킨 베냐민 지파와 더 나아가 이스라엘의 총회도 그들의 소견대로 행하여 사분오열된 모습을 고발한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백성 다움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사사기는 하나님 없는 불의하고 무정한 시대의 잔상을 마지막 구절까지 남기고 있습니다.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럼에도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끊이지 않는 반역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꾸준하심과 신실하심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신음소리를 들으실 때마다 그들을 위해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의 삶 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빛을 발하고 있고, 죄 속에 헤메고 있는 그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들처럼 연약하고 볼품없는 미약한 존재들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우리의 한 생애 동안 하나님의 사사로 아름답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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