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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숲설교(갈라디아서)
안남기목사 2024-03-02 추천 0 댓글 0 조회 34
[성경본문] 갈라디아서2:16 개역개정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본문 : 갈라디아서 216

제목 :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일시 : 2024. 3. 3

 

바울에게 갈라디아 교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첫 번째 전도 여행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지방은 사도행전 13장과 14장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가 제1차 선교를 통해서 복음의 씨를 뿌린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기도 있을 정도로 악전고투하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곳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여 준 바울을 사랑하여 자기들의 눈이라도 빼주고 싶을 정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곳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더욱이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들의 거짓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편지이고, 본론의 내용은 마치 법정에서 수사학적 수단을 사용하여 설득하는 변론의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부탁도 있고, 개인적인 속마음을 드러내기도 했고, 격정적으로 복음의 진리로 대항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한때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믿었다가 빗나간 갈라디아의 성도들을 다시 찾고자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인사말은 다른 편지와는 달리 받는 이들에 대한 아무런 감사 표현이 없습니다. 1절부터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자신을 강력하게 변호하고, 4절과 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설명하고 찬양하며 시작합니다. 복음의 내용을 분명하게 전한 것입니다.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예루살렘의 사도들로부터 권위를 받아 사도가 된 것이 아니고,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그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나 야고보,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과 조금도 다름 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서신서에는 수신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갈라디아에서는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한 공격과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어리석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까지 격렬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언급했다고 하는 것은 매우 분개했다는 것입니다.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10절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1절부터 바울은 자기에게 복음이 전해진 경위를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1절에서 언급한 내용을 반복하면서 12절에서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라 하였는데,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후 3년 아라비아에서의 시간, 예루살렘에 올라가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15, 그리고 14년 동안 고향에서 영적인 생활 중에 받은 계시라 하였습니다. 이어서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위선적인 베드로의 태도를 책망하는 모습에서 바울이 전한 복음의 권위를 드러낸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누구였을까요? 유대적인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이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할례를 받아야 하고, 특정한 날과 달을 숭상하고, 율법에 명시된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이 들어온 이유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 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215절에서부터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가르쳤던 복음을 다시 한번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16절에서 복음의 핵심을 말씀합니다.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바울은 유대인도 이방인과 같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행하고자 했지만 불가능한 것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자기의 죄를 없애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그 율법을 통하여 죄인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 율법이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만일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헛된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십자가 복음에 다른 구원의 요소를 첨가해야 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와 함께 못 박힌 것을 강조하고 자기 안에는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만 산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의 간증으로써 전하고 있습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었기 때문에 눈에 선할 터인데, 도대체 누가 너희의 마음을 흘러서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묻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한탄합니다. 바로 이어서 또 다시 질문합니다.

 

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바울은 다시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는 자는 범법한 자가 되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책망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행위를 의지하는 자는 성령을 부인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어서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이방인이 할례를 받아야만 유대인이 되고 그 후에 아브라함의 후예로 인정받는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다시 한번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표준으로는 아브라함이 의인이었으나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의인이 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의로움이 주어진 것은 그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그의 믿음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야 참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바울은 율법과 약속의 관계를 분명히 하려고 실상활에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율법이 무엇이고 율법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법은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있는 것과 같이 법은 범법자에게 형벌을 줌으로써 악을 억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사람을 의롭게 하지는 못합니다. 율법도 영적인 목적과 기능이 있는데 율법은 그의 죄와 하나님의 무지에 대해 드러내 줍니다. 율법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죄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죄를 제거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 율법은 우리의 부족한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줍니다. 바울은 율법을 초등교사로 비유하여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한 집안의 유업을 이을 자가 어릴 경우에는 성장할 때까지 후견인 밑에 있게 되므로 종과 다를 바 없으므로 종과 다른 것이 없지만,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종이 아니라, 성장한 아들이 되어 유업을 이어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고, 초등교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을 받을 자인 것입니다. 바울은 갈리디아 교인들에게 목회자의 심정으로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바울은 또 하나의 예를들어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종에게서 난 이스마엘이었고, 하나는 자유의 여인 사라에게서 난 이삭이었습니다. 바울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맺은 언약 곧 율법은 여종 하갈에 해당한 것이고, 반면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여자 사라에게서 난 아들로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선언합니다.

 

바울은 5장에서 율법의 종노릇하였던 유대인이나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던 이방인에게나 자유를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죄로부터 자유, 사망으로부터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사랑으로 종노릇 할 것을 요구합니다. 자유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자유는 믿음 안에서 누리도록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누리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온전한 관심과 책임감 있는 태도와 행위를 보여야 합니다. 바울은 5장과 6장에서 이러한 태도를 성령을 따르는 삶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을 따르는 삶과 육체를 따르는 삶을 대비합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복음 아래에 있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소개하며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바울은 5: 25에서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체는 공동체에 거스르는 나쁜 행실을 낳게 마련이고, 성령은 단 한 가지의 열매를 맺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데 지치지 않도록 다시 한번 격려하고 있습니다.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바울은 다른 편지들과는 다르게 개인적인 공증이라도 하듯 강렬하게 큰 글씨를 자기 손으로 쓰면서 십자가의 메시지로 마무리합니다.

 

6: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시작할 때 거칠고 격양된 표현들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신이 전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전하였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기독교의 기초가 아니라 전부라고도 말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시작된 것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할례를 받은 사람이나 받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인사에서 무척이나 괴로운 심정을 고백하면서도 갈라디아 성도들을 형제로 여기며 축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6: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십자가의 속량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를 받지 아니한 우리들도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되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 되었고 성령 안에서 참 자유를 얻은 자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주신 참 자유케 하는 복음을 다시 확인하고 성령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참 자유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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